수평 이동
2016.02.10 - 2016.02.24
탈영역 우정국
남민지, 이슬기, 임유정, 허연화


포스팅

1. 2000년대 중반 이후, 아마도 어떤 포스트모던한 것들이 시장에서 극점을 찍고 폭락한 이후, 한국 미술계는 기묘한 가치 체계의 붕괴를 함께 겪는다. 몇몇 야심찼던 갤러리는 몸값을 키워놓은 작가를 감당하지 못해 사실상 개점휴업을 준비해야 했고, 맞춤형 생산 그림으로 재미를 봤던 유사 작가를 포함, 작가들은 하나 같이 급작스런 변동, 외면에 적응하지 못하고 슬럼프를 겪어야만 했다. 미술 시장을 비판했던 평론계는 돌연, 시장의 안위를 한국 미술계의 잠재성 및 미래와 겹쳐놓고 걱정하기 시작했다.
한편 그동안 시장에서 빛을 보지 못했던 일군의 포스트모던한 "정치적 미술"은 일련의 비엔날레에 단골 손님으로 초대되다가 하나 둘씩 유수의 제도에서 제정한 미술상을 수상했다. 하지만 이들의 마이너리티 감수성과 어떤 이데올로기 비판의 성격은 무효하거나 이미 사라진지 오래였으니, 이것은 일종의 보상성 전시, 『민중미술 15년』전의 기시감을 불러 일으키기 충분한 것이었다. 민중미술의 트랙 중 하나였던 공공미술 또한 이따금씩 지자체와 영합하는 가운데 심리적, 물리적 폐허를 무차별적으로 만들어 내며 한계 상황을 드러내고 있었다.
이런 경제적, 담론적 공황 상태에서 남은 것은 폭발적으로 설립된 제도 인프라뿐이었다. 그러니까 미술상을 포함, 미술 대학과 다양한 신진작가 지원 제도, 각종 국공립 문화재단과 미술 기관, 혹은 심지어 지자체의 직접 기획 문화사업 등이야말로 미술계의 등뼈가 되었다. 기계를 한 번 켜면 최소한 연료가 다할 때까지는 돌아 가듯이, 이런 인프라는 어떤 관성력으로 미술계의 양적인 부분을 전담하다시피 했다. 동시에 예술가와 큐레이터, 대안공간, 심지어 행동가를 자처하는 자 모두가 준행정가, 즉 지원서 전문가로 분하기 시작했다.
돌이켜보면 그러니까, 이 시점 이후, 미술(혹은 시장)과 제도 사이의 관계에서 분명한 전도가 일어났다고 말해볼 수 있다. 지원 제도는 필요가 아니라 필수가 되었다. 연초가 되면 미술계의 거의 모두가 모니터에 워드프로세서와 엔카스를 띄우고 뭔가를 쥐어 짠다. 지원 기관의 로고를 도록에 박아 넣는 일이 일종의 훈장처럼 보이던 시대도 지나, 이제 너무나 흔한 엠블렘이 되었다. 오늘날 미술계의 어떤 누구도 '헝그리 정신'을 말하는 자가 없으며, 비슷한 의미로 컨템포러리 아트를 한다고 하는 작가가 자비로 일반 갤러리를 대관하는 일이야 말로 일종의 불가해한 일이 된다. (제대로 된 갤러리는 일반적인 대관업무를 거의 하지도 않지만.) 지원금을 업은 대다수 작가는 따라서 새로운 미술의 산실이라고 할 수 있는 대안적인 공간의 문을 두드리게 되며, 이로서 대안 공간은 지원금이 흘러 교집하는 저수지가 된다. 오늘날의 대안 공간 대다수는 한편으로 공간 지원금, 다른 한편으로 예술가 개인이 획득한 지원금의 대관비 예산으로 운영되고 있다.
그러니까 역설적이게도, 오늘날 지원 제도만이 일종의 중성 지대이며 진정한 어떤 실험의 장으로 기능하는 것처럼 되어 있다고 말해 볼 수 있다. 상황이 이렇기에, 과장하면 미술계의 과반수 이상의 비율을 기획하고 심사하고 선택하는 '큐레이터'가 이런 지원 시스템과 거기에 연루된 소위 전문가들이 아닐까 의구심이 들 정도다. 분명한 것은, 이런 시스템 안에서 미술은 근본적으로 제도에 반하지 못하는 위치에 등재되어 있다. 미술은 심지어 정치적일 수도 있지만, 제도에 치명적이지 않을 만큼만 정치적이어야 하며, 그런 한 제도의 어떤 정치적 개입 하에 (정치적인) 미술은 승인되어야 할 것으로 대기열 옆에 선다. 이것을 기반으로 미술계가 돌아간다. 다시 말해 미학은 정치화될 수 없으며 되려 그 역전, 정치가 미학화 한다.
2. 조금 다른 각도에서 들여다 보더라도 여기, 혹은 최소한 서울의 시공간은 몹시 미학적이라고 봐야 한다. 로잘린드 크라우스의 유명한 도식처럼 포스트모던 조각의 특성을 (비)풍경과 (비)건축의 혼합체로 간주할 수 있다면, 오늘날 서울이야말로 풍경이자 건축이자 비풍경이자 비건축이다. 서울에 더 이상 자연적인 것이 남아 있지 않다는 점에서 건축이자 비풍경이며, 그것이 곧 제2의 자연이 됐다는 점에서 풍경이자 비건축과도 같다. 또한 인위적으로 설계된 시스템이 어떤 패턴을 구조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비건축이자 건축이며, 위성으로부터 매핑되어 스마트폰으로 들어온 서울은 풍경이자 비풍경 그 자체다. 그러니까 포스트모던 조각, 좀더 풀어서 예술의 논리적 그리드를 그대로 실생활에 그대로 깔아놓은 장소가 바로 서울인 것이다. 이런 논리가 거시적이고 미시적인 차원에서 인간을 그물처럼 둘러 싼다.
첨병은 역시 디자인이다. 오늘날 제품뿐만 아니라, 미술 전시부터 건축, 프로그래밍, 산업 전략, 다양한 분야의 시스템 설계, 심지어 라이프스타일과 업무 프로세스까지 모두 디자인의 대상으로 사려된다. 그러니까 현대 디자인은 단지 산업 시대의 제품을 만드는 차원에서 훨씬 벗어나서,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것과 합체하는 접속 기계다. 아르누보와 바우하우스를 거친 오늘날의 토탈 디자인의 세계는 할 포스터의 지적처럼 산업시대의 제품의 정치경제학을 기호의 정치경제학으로 개편했다. 여기서 제품은 자신의 다른 인격, 이미지로 화하며, 다시 이미지는 인간 욕망의 화신, 자아의 미니미 mini-me가 된다. 더욱이 이런 물질의 기호화, 나아가 미학화는 컴퓨팅과 데이터베이스 시스템, 커뮤니케이션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유비쿼터스 차원에서 이미 풀가동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오세훈 전 서울 시장은 디자인의 중요성을 매우 잘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에, 서울시 행정 시스템을 디자인 중심으로 개편하는 가운데 디자인을 통한 "르네상스"를 일으키고자 애썼다. 이때 뜬금없는 "르네상스"란 말이 주는 기묘한 키치적 감정은 중세를 혁신했던 조르주 바자리의 개념, 디자인의 어원이기도 한, 디세뇨 disegno를 이끈다. 디세뇨는 건축과 회화, 조각 등 아름다움의 이념을 (일종의 과학적으로) 모방하는 인간 활동을 묶어 지칭하는 말로, 인간적으로 신을 표현했던 고전주의적 이상을 함축한다. 마찬가지로 디세뇨의 현대적 귀환은 신을 인간화(현실화) 한다고 볼 수 있는데, 이때의 신은 포스터의 주장처럼 물신화한 상품-이미지도 되지만, 더욱 고전주의적 감각에서 육화한 신, 기념비적 아이콘일 법도 하다.
이런 감각에서 크라우스가 모더니즘을 탈신성화함으로써 도출했던 논리적으로 확장된 조각의 장, 현재 구체적인 생활에 펼쳐진 그것이 디세뇨의 이념으로 다시 한 번 신화 시대로 돌아간다. 더불어 크라우스가 모더니즘의 본질로 규정하고 비판했던 그리드의 신화가 다시 돌아온다. 표면에서 유물론과 관념론의 모순을 마술처럼 화합시키는 베일인 그리드는, 크라우스의 확장된 장의 논리에 의해 삶을 더욱 철저하게 이중구조화한다. 이때의 그리드는 포스트-포디즘 시대의 정치, 사회, 경제 시스템이나, 혹은 그것을 내면화한 일종의 인간 그리드로 부상하지만, 결국 현실을 가리는 신화이거나 신화를 보존하기 위한 현실의 가림막으로서, 인공적이면서도 언제나 영원하고 어디서나 편재하는 것처럼 발견된다는 점에서 모더니즘의 그것과 동일하다. 모더니즘 시기 회화와 조각의 표면을 구조화했던 그리드는 이제 현실의 땅과 인간을 덮친다. 바야흐로 미적 도시, 기업, 인간이 표면으로부터 탄생한다. 창조도시, 문화기업, 힙스터 등 삶 속에 구현된 이들은 이런 의미에서, 어쩌면 쉽게도 예술과 예술가 자신의 거울상일지도 모른다.
3. 그러니까 나는 지금 우리의 삶이 진정으로 미학화되어 있다는 것을 상기하기 위해, 미술계의 간략한 조건을 짚어보는 것으로부터 시작해, 삶을 둘러싼 구조적 환경 전체를 크라우스와 포스터를 경유해 논의했다. 이때 현재의 삶의 구조가 일종의 논리적 혹은 기호학적 그리드라고 주장했으며, 그것이 결국 동시에 감추고/드러내는 이진법으로 작동한다는 점에서 모더니즘 그리드와 별반 차이가 없다는 식으로 다소 단순하게 도식화했다. 비약을 감수하면서도 나는 이런 방식을 선호하는데, 이미지로 생각하는 데 보다 용이하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오늘날 세계가 모더니즘 추상 회화나 조각과 다를 것이 없이 그리드로 덮여 있다는 이미지를 가정해볼 수 있다. 일례로 예술가의 신체 자체도 그리드의 산물이다. 예술가 그리드는 모더니즘 조각처럼 예술 그 자체를 몸 안으로 빨아 들임으로써 어떤 자율적 신체(한편으로 신자유주의적 신체)를 선언적으로 시연하면서도, 한편으로 제도에 무의식적으로 끌려가며 (전형화된 포트폴리오와 작업 노트, 프레젠테이션 등이 그렇듯) 어떤 반복적 스테레오타입, 즉 이 시대의 유일한 양식을 현시한다.
이런 자율성과 유일성(편재성)을 형태학적으로 이미지화한 것이 크라우스의 유명한 원심력과 구심력의 비유인데, 몇몇의 예술가는 그 테마를 다시 한 번 현재화하려고 애쓴다. 예컨대 이슬기의 퍼포먼스 비디오에서, 기둥에 묶인 퍼포머가 움직이며 그려내는 궤적은 명백하게 그리드의 메타포이며, 그가 기둥과 반대로 달리며 만들어진 팽팽한 긴장, 하지만 평형 상태는 구심력과 원심력 자체를 시연한다. 그리드는 두 가지 힘을 통해 그 궤적을 안정 상태, 그러니까 반복의 평형상태로 유지하려 하지만, 퍼포머가 반복해서 같은 궤적을 빗나간 궤적으로 덧쓰는 가운데 그 궤적은 거듭 쓴 양피지, 팰럼세스트로 변한다. 이런 방식으로 원심력과 구심력 사이에서, 예컨대 퍼포머의 반구심력은 당기는 힘을 반원심력으로 변화시키며 일종의 힘의 잡종적 생태계를 만든다. 이렇게 그리드를 중층화 한다. 시대의 단 하나의 (삶의) 양식을 거부하면서 말이다.
확산과 응축의 긴장, 혹은 평형 상태라는 그리드의 조건은 남민지의 인스톨레이션에서 더욱 복잡성을 더한다. 추상 회화의 3차원 판본으로 보이는 사각형의 큰 방은 다시 직각으로 구획된 같은 크기의 작은 방으로 나뉘어지며, 정확히 그리드의 반복성을 표현한다. 이때 수직과 수평의 교차점, 정중심에 배치된 구 모양의 오브제는 정확히 각각의 구획된 방과 같은 색깔로 칠해져 방과 함께 그야말로 전일성을 이룬다. 즉, 구는 그리드의 본질, 조화로움을 표상하는 어떤 쐐기돌이다. 하지만 이때 구가 가운데서 빙빙 돎에 따라 그리드가 교란되기 시작한다. 단단하게 구획된 방의 안정성은 구의 회전으로 액체화되며 각각의 방은 서로 섞인다. 이런 작동은 방의 전일성을 깨뜨리며 그리드에 일종의 구멍을 뚫는다.
이슬기와 남민지가 작업에서 탐구했던 그리드의 이중적 힘은 임유정의 작업에서 스카이콩콩의 비유로 고스란히 시연된다. 스카이콩콩은 지구의 구심력, 즉 중력을 이겨내는 힘의 작용 속에서 원심력과 구심력의 긴장/평형 상태를 만들어내는 장치다. 스카이콩콩의 시스템은 이런 점에서 그리드 그 자체라고 볼 수 있는데, 비디오에서는 반복적으로 행위를 수행하는 가운데, 스카이콩콩이 되려 땅을 파고 들어가면서, 두 힘의 평형 상태가 깨지는 상황을 희극적이면서도 다소 멜랑콜리하게 보여준다. 임유정(그리고 이슬기와 남민지, 앞으로 보겠지만 허연화까지)에게 그리드의 반복성, 그리고 그로 인한 효과인 유일성을 해체하는 것은 중요한 과제다. 상승과 하강의 반복 가운데 평형 상태로부터의 이탈을 모색했던 테마는 '파도타기'와 '피에로 피리'에서 표현되는 어떤 엇박자를 통해 계속 반복되는 가운데, 또 변조된다. 특히 임유정의 경우 디지털 이미지 조작을 통해 그렇게 하는데, 실재와 가상이 모두 이미지로 화한 오늘날, 이미지를 통해 이미지를 변화시키기 위해 그렇게 한다.
내가 지금까지 살펴 본 작가들은 모두 이미지를 다루고 형상화하고 있지만, 오늘날의 존재론적 양식이 오직 이미지라는 점에서, 그리고 작가 모두가 그것의 양태를 신중히 고찰하고 있다는 점에서 나는 그것을 일단의 유물론적 탐구라고 말해두고 싶다. 그리드는 이미지의 유물론적 탐구를 가리는 동시에 그 표면-이미지를 신화화한다. 예술가는 (이미 삶이 되어버린) 그 표면 위에서, 그것의 구조를 다시 쓰거나, 흔들거나, 폭로하며 맞선다.
그런 점에서 허연화의 조각과 인스톨레이션은 감추면서/드러내는 그리드의 이진법을 구조적인 감각으로 무대화한다. 쓰리디 모델링으로 만들어진 가상적인 이미지의 이종적 혼합체는 때로는 조각으로, 평편한 이미지로 만들어지는데, 이 모든 것들은 다시 종합적으로 구조도 안에서 매핑된다. 구조도가 이것들을 매끈하게 정련하려고 하는 그리드의 신화적 측면이라면, 병치된 이미지 콜라주들은 그것이 그 시작부터 매끈한 표면이 아니었음을 상기시킨다. 일련의 작업과 설치가 만들어내는 인터페이스는 그리드의 관념론과 유물론이 변증법적으로 충돌하는 자리라고 하겠다. (16.1.24)
안대웅